무제05
원화작품이다래 작가의 손에 종이와 펜만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단숨에 그려낼 수 있다. 망설임 없는 선에 포획되어 온갖 것들이 그녀의 세상 안에 배치된다. 그곳에는 창조자가 감춰두려 애쓰는 불순한 감정 따위는 없다. 단순히 어떤 것을 그리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과 그리는 과정에서의 창조적 유희가 숨김없이 드러날 뿐이다. 그날따라 눈에 들어오는 정물이나 풍경, 백과사전의 삽화, 혹은 이전에 그렸던 그림의 한 부분에서 시작하여 그녀의 이야기는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마음을 끄는 것은 곧바로 화면 속으로 소환된다. 형태에는 새로운 규칙이 적용되고 이 갑작스러운 변환에 의해 비워진 대상의 내부는 엉뚱한 것들로 채워진다. 이들이 하나씩 그림 속으로 순조롭게 들어올 때마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볍게 두드린다. 이다래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의외의 색을 섞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색은 섞을수록 계속 탁해지지만 그는 혼색을 예상치 못한 곳에 과감히 사용한다. 그로 인해 가볍게 나풀거리던 파스텔 톤의 화면은 중력을 얻은 듯 묵직해지고 휘어진 공간을 따라 색의 리듬이 생겨난다. 그는 때론 넘어올 수 없는 벽처럼 견고한 선으로 공간을 구획한다. 화면 안에 원근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다가도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모든 것을 평면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에 공간을 익숙한 방식으로 특정 짓던 관람자는 그녀가 설치한 엉뚱한 장치 앞에서 갑자기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림 속 생물들은 누군가를 배척하지도 그렇다고 거하게 환영하지도 않는 오묘한 표정으로 화면 밖을 바라본다. 이들의 이 알 듯 말 듯한 미소는 상대방을 향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무언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렸을 때 살며시 짓게 되는 그런 미소처럼 보인다.
- 이다래 작가노트 中 -
작가명 | 이다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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